물이 들고 나면서 갯벌에는 물결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주름이 생겼다
조용하게, 꾸준하게, 파도가 만들어낸 부지런한 흔적
그 주름들은 뻘밭에 새겨진 시간의 무늬들이다
어느 추상화가가 있어 저토록 정교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시간은 물밑을 드나들면서 펄과 뒤엉켜 해독할 수 없는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커다란 파도가 닥쳐와도 쉬이 씻기지 않을 소박하지만 깊은 문양은
한낮의 햇볕을 받아 녹슬은 은쟁반처럼 속으로 반짝였다
갯벌에서 파닥이던 빛의 조각들은
해 질 녘 오랜지 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따뜻하다가도 이내 내려앉은 어둠으로
마지막 잔광에 뒤채이며 어둠 속으로 잠긴다
이윽고 갯벌도 바다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아무 곳에도 도달할 수 없는 무서움만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