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장군 피체지- 순창 쌍치면 피노리 주막)
쓸쓸한 바람만 감도는 순창 쌍치 피노마을
한무리 문학단체 회원들이 그날의 주막을 기웃거린다
전봉준 장군 피체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 정예 부대에 패한 녹두장군은
후일을 기약하며 옛 부하 김경천의 도움을 받고자
이곳에 숨어들지만 1894년 12월 2일
금욕과 벼슬에 탐이난 김경천의 밀고로 관군에 잡히고 만다
백성을 사랑한 죄 무슨 허물이더냐
전시관에서 마주한 전봉준 장군의 그 강렬한 눈빛
여전히 뜨거운 피가 흐른다.
농민이 주인이 되는 평등한 세상을 열망했던
41살 혁명의 녹두꽃은 그렇게 지고 만다.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 주지고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지 못하였네'
(안도현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