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찻집 연정

까치놀 2017. 5. 8. 18:19

 

 

 

 

 

오랜 시간 우려낸, 입 안에 스미는 정갈한 고요를 만나는 차 한 잔. 차를 마시는 것은 지그시 눈을 감고 두 귀를 열고 물소리 바람소리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영원의 길이가 있을까? 시간을 밖으로 꺼내 보일 수는 없겠지만 여기 앉아 느끼는 하루의 시간은 한없이 길어 영원으로 이어질 것만 같다.

금빛노을에서 여유를 마신다. 주인과 객의 마음이 꽃처럼 곱다. 찻집은 한적하고 평화롭다. 앞마당에는 잔디가 융단처럼 깔려있다. 실내도 좋지만 마당에 놓인 나무탁자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여유로움을 마셔도 좋다. 그냥 멍하니 앉아 생각을 비워낸 고요한 정적과 만나는 시간. 이런 시간의 차 맛은 더 향기롭다. 처마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만으로도 여름 한 자락을 열 수 있는 곳. 여치 매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여름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 개구리 합창 소리만으로도 시끄럽고 화려하고 요란한 소리를 이겨낼 수 있는, 자연 본래의 소리를 만날 수 있는 찻집이 있어 좋다.

소쇄원 취가정 환벽당 싯()물 흐르는 자미탄(紫薇灘) 건너 한 발짝 더 옮기면 거기 연정이 있다. 마르지 않은 샘처럼 글을 쓰고 싶어 연정(涓井)이라 했다지만, 한 방울 한 방울 초록 위를 뛰어다니는 이슬방울의 영혼을 담고 싶어 연정이 되었거나, 마른 그대 가슴을 적시는 물방이 되고 싶어 연정이라 했다면 내 억측일까?

흔히 첫눈에 반한다 지만 여기서는 첫눈에 반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연정(涓井)에서 연정(戀情)을 느낀다면야. 사랑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기에. 혹 마른 풀잎 한줄기 찻집 창 쪽으로 기운다 해도 나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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