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은목서꽃

까치놀 2024. 11. 23. 23:38

 

아침 베란다 창문을 열었더니, 찬바람과 함께 어디선가 상큼하고 달콤한 향기가 안겨 왔다.

내로라하는 화분들 틈에, 9층 높은 곳에서 그도 화분에 담겨 꽃을 피울까 하면서도.

너는 왜 꽃 필 줄도 모르니, 구박받던 은목서가 가을의 문을 닫는 小雪에야 꽃을 피웠다.

작고 귀여운 하얀 꽃망울을 달고 배시시 눈웃음 짓는다.

달콤하고, 상큼하고, 고혹적인 향에 취해, 고맙다,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가 보고 싶다 해도, 나를 위해 꽃을 피워주지 않더라.

화초를 가꾸는 것은 시간을 인식하는 동시에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적막을, 시간이 지니는 고요를, 시간 속에 배인 침묵을 배우는 일이다.

 

청아하고 감미로운 목서향은 나를 부르기도 하고 나에게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얀 꽃망울이 톡 톡 터지는 시간, 은목서 향기로움에 스며드는 시간.

하얗고 자잘한 꽃이 늦가을 바람에 별처럼 반짝인다.

가을밤, 서늘한 바람 속에서도 은근하고 알싸한 향을 맡으면 따뜻하고 로맨틱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홀로인 어느 이의 마음도 토닥여 주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