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꽃은 피었는데
그때처럼 초롱꽃이 환하게 피었다. 이젠 옛 친구의 옛 일이 되었다. 초롱 들고 “이리 오너라.” 큰 소리 치던 즐거운 시절. 함지고 찾아간 그 친구의 신부 집 담장 가에 오늘처럼 초롱꽃이 불을 밝히고 방긋 웃고 있었다. 이 환장하게 좋은 봄날, 춘정을 이기지 못하고 행여 가는 길 어둘까 봐 초롱꽃 초롱 앞세우고 먼 길 떠난 친구, 어느 좋은 시절 있어 다시 그때처럼 ‘불나비사랑’ 목청껏 노래할까? 고작 여섯 해가 지났을 뿐인데, 벌써 다 옛 일이 되다니.
청춘의 한 시기를 함께 웃고 울고 다투며 보낸 친구. 스무 살의 봄에 만나 방과 후 캠퍼스 뒤 막걸리 집에 앉아 젊음을 노래했고, 시집을 함께 읽고 문학을 얘기했으며, 음악다방에 앉아 담배연기 콜록거리며 뜻 모른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폼을 잡기도 했었다. 어느 해 겨울 자취집 냉방에서 오들거리며 찬밥을 먹어도 즐거웠고, 주인집 아가씨의 얘기로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을 달래며 쓸데없이 소주잔만 축내던 그런 철부지 시절도 있었다. 비 오면 비가 온데서, 눈 내리는 밤이면 어느새 들썩이는 맥박소리와 호흡을 함께 했었다. 거칠지만 생생한 기운들이 곁을 맴돌며 우리 삶의 한 자락을 청명한 가을 햇살처럼 눈부시게 만들어 온지 50여년. 참 무던한 세월을 함께 했었다.
“진정 알아주는 이 있다면, 하늘 끝이라도 이웃과 같으리.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은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하늘절벽 끝에 앉아 있다 해도, 지척에 둔 이웃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흐뭇하다고 했다. 우리도 그랬었다. 멀리 있지만 마음의 그림자처럼 함께 하자고 했다. 만남에는 그리움이 따라야 한다고, 그리움이 따르지 않은 만남은 이내 시들해진다고 했었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 때의 마주침이라고 서로를 추슬렀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만남도 뜸해지고, 뜨겁게 뛰던 맥박도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70이 가까워질 무렵부턴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멍청히 앉아있거나, 밥 먹는 한 시간 동안 그저 지나간 소리만 몇 마디 할뿐. 침묵의 공기가 천 마디 대화보다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러다 덜컥 친구는 가고 말았다. 헤어질 때 조심해 가라는 말과, 데면데면 어 그래 손 한번 흔들어 준 것을 끝으로 우리의 만남은 끝을 맺었다. 친구는 그만큼 많이 아팠던 것이다.
길을 걷다가도 문득 친구 생각에 잠기는 건 친구는 떠났지만 함께 걷던 이 거리, 친구의 발자국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 아름다워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까이 느껴지는 그 친구가 보고 싶다. 보이는 것 만으로만 평가 되는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지만 서로의 마음을 맡기며 서로에게 마음의 의지가 되었던, 참 좋은 친구였는데.
세상사 부질없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기도 한다. 보고 싶고, 미안하다. 친구여, 힘들 때 등 한 번 두드려주지 못하고, 좀 더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 나를 용서해주게나. 내 어깨 짐이 무겁다고 투정만 부려서 정말 미안해. 그래서 가슴은 늘 답답하고, 이제 그만 친구를 떠나보내야지 하면서도 아직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함께할 줄 알았지만 그렇게 소중했던 사람은 어느 날 말없이 너무 빨리 가버리고 말았다. 꽃은 져도 향기는 대기 중에 머물 듯, 그대 떠난 자리에 남은 향기는 저미듯 스며드는 그리움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렇게 자주 가던 친구 집이었는데, 그 집 앞이 아니라 그 집 근처다. 친구가 살았던 집 근처를 우연히 지나쳐 가는데 가슴이 떨린다. 온몸이 그 쪽으로 쏠려, 세포 하나하나가 속삭인 것만 같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늘 가보고 싶었다. 그 집, 그 창이라도 보고 싶었다. 갑자기 화석처럼 굳어 있던 시간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혹 대문 앞에 서 있으면 친구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으려나.
이규보(1168~1241)는 눈보라 속에 말을 타고 벗을 찾았는데 마침 벗은 집에 없었다. 그는 채찍을 들어 문 앞에 크게 자기 이름을 쓰고는 이렇게 읊조렸다. “바람아 부디 쓸지를 말고,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다오.(莫敎風掃地, 好待主人至.)”
곧 친구의 6주기다. 이제 특별히 기억할 것도, 챙길 것도 없다. 그냥 이렇게 가슴에 담아두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화단가로 초롱꽃이 곱게 피었다. 어디선가 귀한 손님이 찾아올 것만 같다. 옛양반님네들 야간 행차 시에 “게 물렀거라!” 소리치던 하인들의 손에 든 초롱도 같고, 마치 신랑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켜놓은 청사초롱도 같다. 너무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그런 연자주색 초롱꽃 한 송이 친구 앞에 올린다.